1/8 페이지 열람 중
초록마을-에필로그밤낮없이 고 된 하루가 시작되었다.예상은 했지만 마을의 무너져 내린 집을 고치랴 밭을 다시 일구랴 현우의 일상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마을 사람들 역시 고됨을 호소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터전이 다시금 새롭게 다져지는 것을 보고는 차츰 힘든 노역을 견디어 내기 시작했다.비록 초가집일망정 아담하게 생겨난 집을 보며 아낙들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 올렸고 서로가 힘을 합치며 마을에 한 채 두 채 집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비로서 활기를 띄우며 현우의 일에 동참을 하기 시작했다.늘 현우의 옆에서 묵묵히 힘든 일을 하는 혜숙이 현…
71부이른 아침 장대비를 뚫고 마을을 들어서는 현우가 보였다.줄기차게 내리는 비속을 오랜 시간을 걸었는지 현우의 안색이 파리하게 보여졌고 근심거리가 있는지 현우의 표정이 굳어진 채 마을을 들어서기 시작한다.예사롭지 않은 비에 마을 안은 벌써 많은 빗물이 도랑을 만들며 흐르고 있었고 좀 전에 지나왔던 하천도 금새 물이 넘칠 듯 위험천만하게 느껴졌다.알 수 없는 어둠의 그림자가 현우의 얼굴로 내려 앉은 채 한동안 현우는 마을을 돌아보고는자신의 집으로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걱정스러운 마음을 하늘이 달래주는지 대문을 들어서는 현우를 바라보…
아무래도 연화의 표정이 이상하게 느껴졌다.남편과의 일이 있은 후 시간이 남을 때면 가끔씩 장가노인의 집을 방문하곤 했는데 다시 며칠 만에 찾은 장노인 댁에서 연화는 무척이나 반가운 내색으로 현우를 반기고 있었다.자꾸 보면 정이 드는지 현우를 바라보는 눈 빛엔 따뜻하면서도 알 수 없는 정이 흐르고 있었고 은근히 현우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지며 현우의 주위를 배회하는 게 느껴졌다.나름대로 사람의 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넘겨 버리기는 했지만 현우는 왠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에 야릇한 느낌도 생긴다.작지 않은 키…
현우는 갈등이 되는 듯 무거워진 얼굴로 장승처럼 굳어져 있었다.자신 때문에 힘든 상황이 된 연지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이며 어떻게 그녀를 바라 볼 것인지 막막해지는 느낌 뿐이었다.현우의 대답을 기다리는 장가노인과 아낙의 눈 속엔 간절함이 보여졌고 안타까운 마음도 느껴졌다.나직이 한숨을 토해낸 현우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떡이며“그리 하지요……내가 도울 수 있다면 그리 하지요…….”“고맙네………정말 고맙네……..”“고마워요……..”밝아진 얼굴들이었지만 현우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 질 뿐이었다.혹시나 자신을 만난 연지가 더 큰 시련을 겪지나 …
촘촘히 맺혀있는 보리이삭의 알맹이가 제법 실하게 보여지며 널다란 들에 푸르른 물결이 일렁였다.밭 사이로 난 소롯길을 걷고있는 현우와 혜숙은 말이 없는 가운데서도 서로의 생각을 읽은 듯 가끔씩 시선을 마주치고는 잔잔한 미소를 눈빛으로 나누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취에 동화라도 된 듯 한동안을 발을 멈춘 채 초록으로 물든 들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매년 똑 같은 작물을 파종하고 수확을 하곤 했지만 올해처럼 마음이 풍요롭게 생각되기는 처음이었고 초록으로 물든 보리의 물결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띄운 혜숙은 마냥 행복하게 느껴졌다.작년, …
67부따뜻한 햇살이 비춰지는 한낮에 초록동으로 들어서는 달구지가 보여졌다.달구지 가득 짐을 실은 채 마을 입구를 지나 들어서고는 누군가를 찾듯 중년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이른 아침 출발을 하였지만 점심때가 되어서야 도착할 만큼 먼 거리를 쉬지않고 온 때문인지 사내는 피곤한 듯 하면서도 다소 짜증스러운 표정이 묻어났고 마침 집을 나서던 아낙과 눈이 마주치고는 아낙을 부르는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풍천댁은 낮선 이가 마을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이 되고는 조심스럽게 사내에게 다가섰고 사내의 뒤로 보여지는 달구지를 보…
산골의 이른 아침현우는 곤하게 잠을 자는 인화를 남겨둔 채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싸늘하게 느껴지는 새벽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며 청량함을 전해주었고 구름 속을 걷는 듯 아스라한 안개가 분지를 흐르며 신비감을 느끼게 만들었다.현우는 지난밤 노인내외의 환대덕분인지 다소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마치 손주사위라도 맞은 듯 노인내외의 따뜻한 보살핌과 환대에 인화에 대한 불안감을 씻을 수 있었고 밝아진 인화의 모습에서 만족스러움을 읽을 수도 있었다.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인화에 대해 불안함과 걱정스러움에 한동안 많은 고민을 했었지만 노인네의 인자…
얼었던 대지가 풀리며 연녹색의 새싹이 피어나고 겨우내 바위처럼 굳어졌던 하천이 얼음을 뚫고서 흐르기 시작했다.버들강아지의 봉우리가 점점 부풀어 오르며 봄날의 시작을 알린다.마른 잎을 떨어냈던 산속의 나무에선 기지개를 켜 듯 마른 속삭임이 바람을 타고서 들려오고 겨우내 잠을 자던 개구리가 땅을 박차고는 개울물로 돌아가며 온갖 생물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싸늘하기는 했지만 햇살을 품은 바람이 김진사댁의 담장을 타고는 흐르며 집안으로 스며든다.현우는 기지개를 켜고는 마당을 나서 뒤뜰로 향했다.날씨가 완연히 풀려가자 현우는 일이 많아졌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현우를 발견한 혜숙이 현우를 부른다.아마 인화의 일을 혜숙도 알고 있는 듯 했고 대장간의 장년아낙이 어떤 언질을 했으리라 짐작을 하기는 했지만 어느 부분까지 알고 있는지를 모르는 현우는 괜히 죄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혜숙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그래….인화씨에게 다녀 오는 거니..??…”“예…….숙모…”“이제는 니가 이 집안에서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데….앞으로의 처신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만…….도대체 어쩔 생각인지 모르겠구나…..”“…………..”고개를 숙이는 현우의 귓가로 나직한 혜숙의 한숨이 들려왔…
할머니인 영주댁이 의식을 잃은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침울해진 분위기 때문인지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게 변해있었고 현우는 이틀 내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는 영주댁의 곁을 지키기만 했다.걱정이 되는 듯 혜숙과 윤지는 안방을 드나들며 영주댁의 동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고 소식을 들었는지 간간히 아낙들이 다녀가기도 했다.소복히 쌓여가는 눈이 시름을 덜어 주기라도 할 듯 소리없이 마당을 덮어가는 게 보여지며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한다.초췌해 보이는 모습의 현우가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는 게 보였다.상심이 컸는지 까칠한 피부와 …